로이스님과의 인연은 코딩 야학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코딩 야학은 혼자서 코딩 공부하기 어려워 하는 사람들을 지원하기 위해 운영되었던 프로젝트였다. 특정 기간 동안 같은 시간에 각자 공부하되 궁금하거나 잘 안 풀리는게 있으면 조력자들이 도움을 주는 형태로 운영되었다. 나는 조력자로 참여했었다. 이 프로젝트는 구글이 스폰서링 해주었는데 구글 내부에서 이를 주도해주신 분이 로이스님이었다. 회의 자리 등에서 한 두 번 뵈었었는데 정말 에너지가 굉장한 분이고 배울게 많은 분이란 생각이 들었었다.
얼마 뒤에 로이스님이 구글 본사로 가신다는 소식을 듣고 역시 대단하신 분이다라고 생각했다. 그 뒤로 몇 년이 지났다. 페이스북을 보는데 로이스님이 마트에서 자기 덩치보다 더 큰 짐을 옮기기 위해 끙끙 대는 영상이 나왔다. 이게 뭐지? 놀라서 페이스북 프로필에 들어가보니 구글에서 정리해고 당하신 후 실제로 마트에서 일을 하고 계셨던 것이다. 그리고 이미 “구글 임원에서 실리콘밸리 알바생이 되었습니다”라는 책을 출간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너무 궁금해서 읽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책은 로이스님이 구글에서 정리해고된 후 1년 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가 담겨있다. 정리해고 당시에 어떤 심경이었는지, 그 충격에서 어떻게 빠르게 헤쳐나왔는지, 어떤 생각으로 어떤 일들을 했는지, 그 과정에서 무엇을 느꼈는지 읽기 쉬운 문장으로 기록되어 있고, 중간 중간 자기 계발에 도움이 되는 팁들도 정리되어 있다. 안면이 있는 사람이라 그런지 식사 자리에서 이야기 해주시는 느낌을 받으며 읽었다.
책 초반에 정말 보통 사람은 아니구나 하고 피식 웃은 대목이 있다. 이왕 해고된 김에 1년간 안식년으로 삼고 그동안 회사 다니느라 못했던 것들을 해보자라고 마음 먹고 목록을 작성했다고 한다. 보통 이런 경우 못해본 놀거리를 적게 마련인데, 로이스님의 목록은 온통 ‘일’이었다.
- 슈퍼마켓에서 일하기 : 특히 트레이더 조
- 공유 운전 플랫폼 운전사 되기
- 스타벅스 바리스타 되기
- 인엔아웃 버거에서 일하기
- 레스토랑 바텐더에서 일하기
- 아동 도서 전용 서점에서 일하기
- 등등등
나도 평소에 ‘하고 싶은게 너무 많아서 고민이야’라고 이야기하곤 하는데 로이스님에게는 명함도 못내밀겠다 싶었다.
살다 보면 종종 인생에 큰 영향을 주는 책들이 나타난다. 이 책은 내게 용기를 주는 책이었다. 넘어져도 괜찮아. 죽지 않아. 나이가 먹었어도, 그 동안 해왔던 일이 아니어도 할 수 있는게 있을거야. 내가 관점을 바꾸면 일의 재미도 의미도 달라질 수 있어. 내친김에 읽은 로이스님의 다른 책 “계속 가 봅시다 남는게 체력인데”에서도 비슷한 메시지를 계속 받았다. 겁먹지마. 할 수 있어. 까짓 것.
물론 여러가지 요인들이 있었지만, 로이스님의 책들은 최근 나의 이직 결심에 큰 영향을 주었다. 익숙한 환경에서 벗어나 다른 역할, 안 해본 프로그래밍 언어, 생소한 비즈니스 분야의 일이었다. 그동안 내가 쌓아온 커리어는 버리고 새로 시작하는 샘이었다. 하지만 잘 되면 여러모로 내가 원했던 것들을 이룰 수 있는 기회였다. 실패하면? 실패해도 그걸로 끝이 아니고 분명히 뭔가 얻는게 있을것이다. 그런 믿음과 용기가 이 책을 읽으며 생겼다. 감사한 책이다. 이런 책을 이 시기에 만나서 참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