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에 축구를 하다가 무릎 뼈가 부러지고 연골이 찢어졌다. 약 5주간 발목 부터 엉덩이 밑까지 통 깁스를 했다. 다리를 못 움직인 5주 동안 신경이 둔화되고, 근육은 싹 빠져버렸다.
깁스를 풀고 나서는 나름 꾸준히 재활 치료도 받고 운동도 했다. 하지만 8주차인 아직도 두 다리의 근육양이 확연히 차이난다. 정상인 오른쪽 다리의 무릎 바로 위 근육은 선명하게 보이는 반면 왼쪽 다리는 밋밋하다.
단 한 달 안 썼을 뿐인데 이렇게나 신경과 근육이 비활성화 되다니. 참 신기하다. 근육이 빠지는 현상은 다리가 부실했던 사람에게만 나타나는 현상은 아니다. 유명한 소방관 출신 유튜버인 홍범석님도 무릎 수술 후 올린 영상을 보면 그 우람하던 근육이 싹 빠져있는 걸 볼 수 있다.
또 신기한건 이렇게 비활성화된 신경과 근육이 쓰기 시작하면 다시 살아난다는 점이다. 홍범석님은 수술하고 두 달 만에 5km를 달리고, 또 몇 달 뒤에 피지컬 100에도 나갔다. 물론, 홍범석님은 보통 사람이 아니니 따라하진 말자. 보통 사람은 가벼운 조깅을 하기까지 4달이 걸린다고 한다.
안 쓰면 기능이 저하 됐다가 쓰면 다시 좋아지는 것이 또 있다. 바로 뇌이다. 니콜라스 카는 그의 책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을 통해 인터넷의 등장으로 인해 사람들의 뇌가 깊은 생각을 하지 않는 쪽으로 변화했다고 이야기 했다. 새로운 미디어 환경이 뇌를 덜 쓰게 만들어 생각하는 기능이 약해졌다는 이야기다. 깁스하고 있는 동안 근육이 빠진 것 처럼 뇌도 쓰지 않으면 약해진다. 다행히 그는 덜 써서 약해진 뇌도 다시 쓰면 신경 세포 연결이 새로 일어난다고 했다. 다리가 재활되는 것과 마찬가지인 셈이다.
나는 출퇴근 시간이 꽤 긴 편이다. SNS, 유튜브, 쇼츠를 소비하며 오가곤 했다. 아무 생각없이 스크롤 하다보면 회사나 집에 도착해있었다. 인생을 낭비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최근엔 의도적으로 SNS, 유튜브, 쇼츠를 멀리하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며칠 실천하니 실제로 뭔가 뇌가 재가동 되는 것 같은 느낌을 받고 있다. 덕분에 요즘은 긴 출퇴근 시간이 마냥 낭비로만 여겨지진 않는다.
최근 긱뉴스에서는 읽은 내용이 당신을 만든다, 기억하지 못한다 해도 | GeekNews (hada.io) 라는 글이 인기를 끌었다. 나는 이 요약 기사를 읽고 ‘읽은 내용을 기억하는 것’ 보다 ‘읽으면서 뇌를 쓴 것 자체’가 더 중요하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한편, 나는 내가 책을 읽을 때 뇌를 사용하길 귀찮아한다는 걸 인지했다.
읽는 것만으로도 뇌를 쓰긴 하지만 그것 만으론 부족하다. 더 적극적으로 뇌를 쓸 필요가 있다. 어쩌면 나는 그동안 책을 지식 습득의 도구로만 생각해 왔던 건지 모른다. 이제는 책을 생각의 도구로 여기려 한다. 물론 뇌가 힘들다고 투정 부리겠지만 ‘대신 기억의 부담은 빼줄게’라고 딜을 걸면 먹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