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정들었던 부릉을 떠나 새 회사에 출근했습니다. 4년 4개월, 제 직장 경력 중 가장 오래 일한 회사가 되었네요. 너무 매력적인 제안에 이직을 하게 되었지만, 불과 한 달 전 까지만 해도 부릉을 떠날 생각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만큼 만족하고 다녔거든요. 오늘은 부릉을 떠나며 부릉에서 좋았던 기억들 몇 가지를 공유해볼까 합니다. 물론 제 개인적인 경험이고 다른 분의 경험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저도 처음 입사한 후 모르는게 너무 많았습니다. 그래서 질문을 자주 올렸는데요. 당시에 신기하기도 하고 놀라기도 했던건 제 질문에 부서를 막론하고 댓글로 도움을 주려는 분들이 많았다는 겁니다. 여러 회사를 다녀보진 못해서 원래 다들 그런건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어떻게 이렇게 협력적인 문화가 만들어졌지?’ 라는 생각을 자주 했습니다.
저는 부릉 엔지니어링 본부에서 나이가 많은 축에 속했는데 나이가 많아서 불편한 점이 전혀 없었습니다. 4년 넘게 일하면서 제 나이를 궁금해하는 질문을 두 세 번 밖에 받아보질 못했어요. 뭐랄까 다들 나이 같은건 서로 궁금해하지 않는 분위기? 어쩌면 사람들이 저에게만 관심이 없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 어쨋든 불편하지 않았어요. 나이는 직책이나 역할에도 영향을 주지 못했습니다. 저와 같은 날 입사했던 유능했던 20대 동료는 쾌속 승진을 하기도 했고, 제가 마지막으로 속해 있던 팀은 젊은 팀장과 나이 많은 고인물 실무자들로 이뤄져있기도 했어요.
테스트를 열심히 작성하고 QA도 체계적으로 하지만 사람이 하는 일이다보니 버그나 장애는 피할 수 없었습니다. 부릉에서는 장애가 났을 때 누구 책임인지를 따지거나 추궁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습니다. 장애가 나면 원인이 뭔지 해결책이 뭔지에 최대한 집중해서 빠르게 해결하고, 해결 후에는 어떻게 하면 같은 일이 또 발생하지 않을 수 있을지 시스템을 개선하는데에만 관심을 보였습니다.
저는 뉴스에서 리더들이 권리만 취하고 책임은 다하지 않는 모습에 유독 분노하곤 합니다. 부릉에서는 제 리더들이 더 많은 책임감을 가지고 더 많은 일을 했습니다. 실무자인 저는 리더들의 그늘 밑에서 정말 개발만 신경 쓰면 되는 호사를 누렸습니다.
아이들이 아직 손이 많이 가는 시기에 부릉을 다닌 건 정말 다행이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어린 아이들을 키우다보면 불가피하게 자리를 비워야하는 상황이 자주 생깁니다. 회사도 동료들도 가족이나 건강 문제에 대해서는 많은 배려를 해줬습니다. 덕분에 가족이 저를 필요로 할 때 많은 순간을 같이 있어줄 수 있었습니다.
이건 회사로서는 안 좋은 일일 순 있는데, 회사가 망할 뻔 하다가 다시 정비하는 과정을 체험한 것도 참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에치와이에 인수되기 전과 후로 회사의 방향성이나 운영 방식이 크게 달라졌는데요. 인수되기 전에는 현재 운용 중인 사업을 기반으로 다음 단계 (이를테면 이륜 배송 사업에서 종합 물류 사업으로 라던가)를 다양하게 시도하는 조직이었고, 인수된 후에는 그동안 벌려 놓은 사업을 모두 정리하고 이륜 사업 하나로 회사의 모든 자원을 정렬하는데 힘썼습니다. 사업이 팽창하는 시기와 수축하는 시기를 모두 겪어본 것, 특히 단순히 사업규모가 축소되기만 하는게 아니라 하나의 제품을 중심으로 부활하는 과정을 겪으며 많이 배울 수 있었습니다.
떠오르는대로 마구 쓰고보니 부릉은 제게 심리적 안정감을 주는 회사였네요. 좋은 시스템, 좋은 문화, 좋은 리더 그리고 좋은 동료들 덕에 즐겁게 많이 배우고 갑니다. 감사했습니다. 부릉과 동료들의 성공을 기원합니다.